유방암 검사 터부 깬 용기 있는 여성들
유방암 검사 터부 깬 용기 있는 여성들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2.08.28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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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길고도 짧은 길을 걸어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골격과 부딪치거나 예측 불가능하며 심지어 조작조차도 일어나고 어쩌면 인과 고리로 연결된 세계로 유영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간은  자연을 구성하는 한 풍경에 불과하지만 그 풍경을 이끌어 나가는 위대하나 졸렬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인간이 갖는 용기는 아름답다. 최근 일어난 한 성폭행범을 제압한 어떤 시민의 행동도 바로 아름다움의 소산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불과 40-50년 전만 하더라도 여성들이 젖가슴을 내놓고 유방암 검사를 받는 것을 극히 꺼렸다. 수치심과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오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1920년대는 유방암 X선 검사가 처음으로 도입되던 무렵이다. X선을 젖가슴 내부에 조사해 시각적으로 살펴본다는 생각은 매우 혁명적이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여성들이 자신의 유방암에 대해 이야기 하거나 검사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금기시 됐다. 아마도 유방=섹스라는 의미와 더불어 은밀한 곳을 노출한다는 부끄러움이 혼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런 사회적·관습적 분위기는 지상의 모든 행위가 기록되지는 않기 때문에 증거도 없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에서조차 1960년대 말까지 지속됐다.

1974년, 마침내 이런 어리석고 무지몽매한 금기를 깨뜨린 여성이 나타났다. 바로 미국 제 38대 대통령(1974~1977)을 역임한 포드의 아내 베티 포드여사였다.

그녀는 남편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한창 바쁠 때 언론에 대고 자신이 유방암을 앓고 있었으며 유방암 절제수술을 받아 젖가슴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 일은 많은 여성들을 쇼크에 빠뜨렸다. “고귀하고 점잖은 퍼스트레이디께서 젖가슴을 입에 올리다 못해 수술까지 했다니….”

일부 성직자들과 유럽 사회의 전통에 익숙해져 온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으나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 중 한사람이 당시 부통령 지명자의 아내인 해피 록펠러다. 그녀는 평소에 자신의 가슴 어딘가에 통증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베티처럼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를 받았다. 의사가 발견한 작은 응어리는 악성으로 판명됐고 뉴욕의 슬론 케터일 메모리얼 병원에서 유방절제 수술을 받았다.

그녀 역시 이 사실을 언론에 공표했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처럼 막연하게 겁을 먹고 숨기며 심지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다른 여성들에게 사전에 대책을 강구하도록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 선구적 두 여성들이 보여준 용기와 선견지명은 미국에서 유방암 검진 돌풍을 몰고 왔다. 수많은 여성들이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를 받고 의학적 조언을 들었으며 수치 대신 건강한 삶을 얻게 됐다.

이 일은 수치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유방암이 장기적 사회 운동의 주제가 되게 만들었으며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구하게 되는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이 일에 대해 예일대 의과대학 교수이며 전미 도서상을 받은 작가이기도 한 셔원 눌랜드는 “용감하고 공민의식이 투철한 이 두 여성은 노벨의학상 이상의 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요즈음에도 일부 저개발 국가나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간단한 유방암 검사를 받기를 꺼리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매우 어리석은 일로 자신의 생명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일이다.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켜 나가도록 하자. (본지 논설위원/소설가/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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