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법이 법 같아야 법이지”
의사들 “법이 법 같아야 법이지”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법에 의료계 ‘분노’ … “집행부 그동안 뭘 했느냐” 지적도
  • 이우진 기자
  • 승인 2016.02.2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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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열린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17일 환자의 사망·중상해 시 의료인을 의료분쟁 조정에 자동 참여시키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소위 ‘신해철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것과 관련,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20일 서울 의협회관에서 연 ‘의료분쟁조정 강제개시 토론회’에서 의사들의 분노가 터졌다.

# “법이 법 같아야 법이지 … 배상금도 부족한데 ‘빵셔틀’ 노릇까지” = 이날 참가자들은 신해철법 개정안으로 인해 발생할 문제점을 크게 염려했다.

안동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의협 회원은 “법이 법 같아야 법이지,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가 의료기관을 운영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의료가 취약하고 주민의 평균연령이 높아 2~3일에 한 분은 돌아가신다. 이러다 강제조정에 걸리면 거의 매일 현지조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문제가 안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은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최고의 피해자는 산부인과(의사)”라며 “의료사고가 아님에도 의료사고로 매도되는 것이 현실인데 배상액마저 적게는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달한다. 이렇게 해서 분만실 운영이나 하겠나. 강제 개시가 시행되면 의사들은 수시로 불려나갈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현행 진료내 위험도에 따른 수가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환자에게 적합한 사고 보상을 해 주기 위해서는 처치 위험에 따라 발생하는 수가를 높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 회원은 “현행 진료행위료에는 위험도 점수에 따른 수가를 지급하게 돼 있는데 위험도에 비해 지급하는 금액이 너무 작다”고 말했다. 이 회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연간 약 50조원의 건강보험급여 비용 중 진료행위료(17조6000억원)의 약 1%(1818억원)는 위험도 점수에 따른 수가로 지급하고 있다.

백내장수술을 예로 들면, 수술 1례의 위험도 비용은 5500원 수준이고 수술 1만건이면 위험도비용 수가는 약 5500만원이다. 문제는 백내장 수술시 실명률이 안과 교과서 기준 1000건당 1건에 달하고 한쪽 눈 실명배상금을 5000만원~1억원으로 잡으면 의사가 수가보다 10배 높은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회원은 “이 돈 가지고 사고 보상도 지급할 수 없다”며 “의사가 ‘빵셔틀’(힘이나 권력이 없어 잡일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은어)이냐. 왜 정부가 의사들을 빵셔틀로 만드느냐. 사고 발생률에 따라 위험도 수가를 지급하면 사고가 발생해도 의사가 환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추무진 의협 회장은 질문을 통해 “이번 개정안은 직업수행의 자유 등을 침해할 요소가 있다. 만약 의협이 헌법소원을 강구한다면 과연 (헌법내) 위헌 요소가 있겠느냐”며 헌법재판소에 해당 사안을 헌법소원으로 제기할 수도 있음을 간접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 “이미 조정신청률 올라가는데 강제까지? … 중재원, 소보원보다 못해” = 의협 내부에서도 이번 개정안에 대한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강청희 의협 상근부회장은 “현재 의료분쟁 조정참여는 증가 추세이고 조정 성립률 역시 88.9%에 달한다”며 “낮은 의료분쟁 조정참여율 때문에 강제개시 하겠다는 개정안의 취지도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강 회장에 따르면, 특히 의료계가 관련 개정안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환자의 ‘사망’ 또는 ‘중상해’의 경우 의료인의 분쟁조정 참여해 의사와 무관하게 자동으로 조정 절차가 개시되도록 명시한 부분이다.

이는 소송 전에 반드시 조정·중재를 거치도록 해 조정의 기본인 합의와 자율성을 무시하는 것으로 의사들의 권리를 국가가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결국 의료분쟁의 가능성이 높은 외과, 산부인과 등에서는 의료인이 중환자를 기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사들의 소신진료를 줄이고 방어진료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 강 회장의 주장이다.

강 회장은 “의사와 환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만 조정하는 현행 절차를 유지하고 해당 개정안의 독소조항을 개선하고 의료인의 자발적 조정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왼쪽부터 강청희 부회장, 유화진 변호사, 박형욱 이사.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도 이번 개정안은 의사들의 의료행위를 방해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법무법인 여명 유화진 변호사는 “이번 개정안의 배경은 낮은 조정참여율(국회 추산 51%가량)에 있는데 실제 데이터를 보면 2014~2015년 조정 건수는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병·의원급은 조정참여율이 50%가 넘는 상황에서 자동개시를 추진하는 것에는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 변호사는 “사망과 중상해가 명확하게 규정될 지에 대한 의문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며 “조정은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조정을 강제하는 것은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한의학회 박형욱 법제이사도 “조정은 재판과 완전히 다른 제도로 상호간 양해가 필수이며 당사자 간의 자발성과 신뢰를 전제로 한다”며 “현재 중재원을 보면 진료기록에 대해 강제조사권을 가지고 있는데, 법원은 모든 의료기록을 환자가 열람 복사할 수 있어 강제조사권도 없고 재판도 잘 진행된다”고 비판했다.

박 이사는 “2014년 국정감사를 보면, 의료중재원은 소비자보호원에 비해 예산을 13배가량 더 쓰면서도 처리건수가 적다”며 “중재원의 모습은 권력적이고, 감정부마저도 의료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가 다수를 차지하는 기형적 모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사망이나 중상해에 있어 의료과실이 차지하는 것은 극소수인데 이 때문에 대부분의 의사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밝혔다.

# “집행부 그동안 뭘 했느냐” 지적도 = 일부 회원들은 이번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할 때까지 의협 집행부가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행사에 참석한 경기도의사회 임원은 “이번 개정안이 상임위를 넘고 법사위에 올라가는데, 사실상 통과된 것 아니냐”며 “여기서 문제를 지적해봤자 상관이 있느냐. 답답하다”고 말한 뒤 “복지위 법안소위 전에 집행부가 문제를 지적했어야 했다. 지금은 뒷북이다. 강제개시가 시작되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온 이동욱 대한평의사회 대표도 “우리(의협)는 원격의료도 조용하게, 비급여 문제도 조용하게 해결하려 한다. 우리 집행부는 어떻게 이렇게 조용한 것이냐”며 “우리가 강제조정 개시에 따른 문제를 홍보했더라면 법안소위에서 통과가 안되지 않았겠느냐. 지금도 의사단체의 목소리는 잘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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