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 전문의 없으면 ‘저과’ 전문의로 돌려막기(?)
‘이과’ 전문의 없으면 ‘저과’ 전문의로 돌려막기(?)
[창간기획] 누가 누구를 치료하는가 ① - 무너지는 진료과 경계 … 전공은 하나인데 진료과는 서너개(?)
  • 이우진 기자
  • 승인 2016.02.28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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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1년간의 인턴을 거친다. 이후 4년간 자신이 전공할 세부 진료 분야를 새롭게 공부한 사람들을 우리는 ‘전문의’라고 부른다. 이 사람들은 오랜 교육을 통해 해당분야의 ‘프로페셔널’이 된다.

하지만 최근 의료계는 극심한 진료과 붕괴를 겪고 있다. 자신의 전문 치료분야가 아닌 다른 질환의 환자들을 빼앗고 빼앗기며 각박한 ‘환자 모으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선 의료현장에서는 이 경쟁체계의 원인 상당수가 경제적 이유라고 말한다. 의사를 고용하기 어려운 경우, 혹은 경영난으로 타과 환자들을 모을 수밖에 없는 경우 등이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무너져가는 진료과의 경계와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등을 짚어봤다.

① 무너지는 진료과 경계 … 전공은 하나인데 진료과는 서너개(?)
② ‘진료영역 침범’ 악순환, 보이지 않는 해결책

# 비뇨기과 전문의 안부르는 이유? “돈이 안되니까” = 300병상 이상의 의료기관에서 가장 흔하게 벌어지는 진료과 혼잡은 ‘비인기과 전문의 배치’ 문제다.

서울의 한 중형병원 비뇨기과 과장 A씨는 “전문의가 쉽게 해결할 일을 다른 과 의사들이 처리하다보니 환자만 죽어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말한다.

A씨에 따르면, 환자가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요도삽관 등의 기본적인 조치만 해줘도 증세가 호전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하지만 삽관 같은 ‘가벼운’ 처치조차 받지 못해 환자들이 적게는 두 곳에서 많게는 다섯 곳까지 돌아다녀야 한다. 비뇨기과 전문의를 갖추지 못한 병원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환자는 처치를 받지 못해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할 만큼 건강이 악화되거나 치료 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상급종합병원 같은 곳은 비인기과라고 해도 전공의나 전문의가 갖춰져 있어 문제가 없지만 중소병원에서는 제대로 치료를 해줄 수 없는 곳이 많다”며 “만약 그 상황에서 비뇨기과 전문의나 전공의가 있었다면 어떠했겠느냐. 아마 방광을 째서라도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라 말한다.

대한비뇨기과학회 관계자이기도 한 서울의 한 대학병원 비뇨기과 B교수는 이같은 문제로 환자의 목숨을 빼앗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고 토로했다.

▲ 한 전문의가 응급실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일정 수준의 병원에서도 이익때문에 정작 필요한 진료과 전문의 대신 타 진료과 전문의를 부르는 소위 ‘진료과 침범’이 일어나고 있다고 B교수는 주장했다. <위 사진은 특정기사와 무관함>

B씨는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 패혈증이 가장 많이 생기는 부위는 폐 아니면 요도다. 실제로 요도 패혈증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례도 많다”며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문제에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비뇨기과에 ‘콜’(요청)을 안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1년 한림대학교성심병원 박성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08년 3월~2009년 2월 한림대성심병원 내과중환자실에 중증패혈증 및 패혈증 쇼크로 입원한 환자의 원인 질환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폐렴(약 55%)이었고 요로감염(약 15%)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관련 진료과에 콜을 하지 않고 내과나 감염내과 등으로 콜을 해 환자들이 정말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B씨의 설명이다.

이같은 사태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A씨는 “돈이 안되니까”라고 단언했다. A씨는 “각 의국(각 진료과를 다루는 부서) 간의 사이가 아무리 안좋아도 필요한 진료과에 콜을 하지 않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며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과를 돌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아까워 인원을 줄이다보니 나중에는 돈 안되는 과에서 일할 사람마저 줄어드는 탓”이라고 지적했다.

비뇨기과학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0병상 이상 300병상 이하의 2차병원 비뇨기과에 근무하는 전문의는 155명으로 전체 비뇨기과 전문의 중 9.5%에 불과하다. 일정 규모의 병원에는 비뇨기과 전문의가 많아야 한두 명이라는 말이다.

이에 반해 개원을 선택하는 비뇨기과 전문의는 63%가량이다. 이마저도 큰 병원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결국 개원이라는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 학회측의 설명이다.

A씨는 “업무집중도가 높고 수가는 안나오는 속칭 ‘뺑이치는’ 과는 병원 경영진이 좋아하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그러다보면 사람을 줄이고, 사람을 줄이면 정작 급할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정말 잘하는 과 대신 인근 진료과 의사를 부르고, 결과적으로 환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B씨는 “사람이 없으면 결국에 뭘 하겠느냐. 병원에서는 ‘다른 과 의사 부르면 되겠지’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각 진료과는 각각의 특성이 있다. 의사는 전문적인 분야에 쉬운 해결책을 제공하지만 인접 진료과 의사들은 먼길을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병원이 돈을 이유로 진료과 침해를 조장하고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 전공은 하나인데 … 진료과는 서너개(?) = 진료과의 경계가 무너지는 곳은 큰 병원뿐만이 아니다. 개원가의 진료과 허물기는 사실상 관행화된 상황이다.

일반의(전문의 과정을 마치지 않은 의사)의 경우는 그렇다 해도 정형외과에서 통증의학과 등의 진료를 수행하거나 통증의학과 등에서 정형외과, 신경외과, 신경과, 재활의학과 같은 여타 진료 과목을 차지한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동일한 증상임에도 각 진료과마다 처방과 물리치료마저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지에서 꼬리뼈 부위의 초기 추간판 탈출증(디스크) 증세를 가진 환자를 정형외과·통증의학과·재활의학과 등 총 네 곳의 의료기관에 보낸 뒤, 각 의료기관에 따른 처방과 물리치료 방법을 확인해 본 결과 네 곳의 진단은 거의 유사했으나 처방과 치료내역은 차이가 있었다.

각 기관 간판등에 모두 자신의 전문과 외에 정형외과 혹은 통증의학과 등을 진료과로 기재한 곳이었다.

의료기관
A정형외과
B정형외과
C통증의학과
D재활의학과
진단명
꼬리뼈 추간판 탈출
꼬리뼈 추간판 탈출
꼬리뼈 추간판 탈출
골반 틀어짐
꼬리뼈 추간판 탈출
주사사용
진통 주사
없음
신경차단주사
진통주사
물리치료
견인·온열·초음파·저주파
견인·온열·초음파
온열·초음파·마사지·도수치료
견인·온열·도수치료

물론 해당 사례가 추간판 탈출증 치료를 담당하는 모든 의원급 의료기관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환자들은 자신이 돌아다닌 의료기관에 이중 삼중의 의료비를 쓰게 했다는 불신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인근 의원에서 요통으로 한달간 치료를 받다가 B정형외과를 찾아 치료중인 50대 여성은 “전에 있던 의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통증이 나을 기미가 없어 병원을 옮겼다”며 “정형외과에서 견인치료와 함께 꼬박꼬박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아픈 게 많이 가셨다. 전에 있던 병원이 괜히 이런저런 치료를 하면서 헛돈을 쓰게 했다”며 혀를 찼다.

인근 정형외과에서 무릎 통증을 호소하다 D재활의학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60대 남성도 “감기 하나마저도 내가 낫기 위해서는 여러 곳을 다녀야 한다. 의료기관 한 곳의 말을 믿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곳을 다녀야 내게 맞는 치료를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한 의료기관의 진료과 표기. 상당수 의원급 의료기관은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 다른 진료과를 게시한다. <위 사진은 특정 의료기관과 무관함>

환자들의 불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의사들이 자신의 전문과가 아닌 다른 진료과를 전면에 걸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의 개원의들은 개원가의 인근 진료과 문제가 생존과 직면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경기도의 한 내과의원 원장은 “물론 전문 진료가 아니더라도 의대를 졸업한 이상 감기 등의 경증 진료는 충분히 진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면서도 “진료과가 하나라고 하면 의사 자신의 과와 관련 있는 인접 질환자들이 우리 병원으로 오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의사도 자영업자다. 메뉴 하나 가지고 누가 생존할 수 있겠느냐. (자신의 진료과로만 영업한다면) 금방 문 닫아야지”라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통증의학과의원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병원이 잘되면 괜찮아요. 근데 정부는 어떻게든 수가를 후려치고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소신진료 못하게 하잖아요. 그렇다고 의사가 밥숟가락 놓습니까? 그럼 진료과 추가해서 이 환자 저 환자 다 받아야죠. 가릴 새가 어디있어요. 그러다보면 비급여 주사 놓고 비급여 요법 남발하다가 결국에 환자들만 돈 많이 나가는 겁니다. 누구는 의사들이 이거저거 다하면서 돈 받아 챙겨먹는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예요. 정부가 이런 상황을 만들고서 정작 국민한테는 의사들 손가락질하게 만듭니까? 이건 국가가 만든 재앙인 겁니다. 의료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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