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생각을 결정한다
언어가 생각을 결정한다
영화 ‘컨택트’ 그리고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영화 : 감독 포레스트 휘태커 2016 개봉 미국 / 원작 : 테드창)
  • 하주원 원장
  • 승인 2017.02.17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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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리아 뉴스] 내가 가장 좋아하는 SF 소설인 테드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 표제작이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당연히 손꼽아 기다렸다.

▲ 당신 인생의 이야기 저자 테드 창 출판 엘리 발매 2016.10.19.

결론적으로 책도 경이롭고 영화도 경이롭다. 굳이 우열을 가리고 싶지는 않다.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책에서 애착을 갖고 있는 부분들이 많이 생략된 것이 아쉽기는 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책이 지닌 정교함을 영화가 전부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둘 다 매력 있다. 둘 중 어느 쪽을 먼저 보고 다른 쪽을 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컨택트’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것이 화가 난다. 다른 제목이 뻔히 있는데도 말이다.

조디 포스터가 출연한 그 옛날의 ‘콘택트’와 헷갈려서 때문이 아니다. 그냥 원작대로 차라리 ‘Story of Your Life’ 라든가 영화의 원제인 ‘Arrival’이 이 이야기의 핵심을 훨씬 더 잘 담고 있다.

사실 제목이 담은 ‘접촉’ 장면은, 꽤 많은 블로거들이 의미를 두는 것과 달리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 작품집은 다른 소설도 너무 재미있고, 훨씬 쉽기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네 인생의 이야기’가 표제작이라는 것을 납득하지 못했다. 처음 읽으면 ‘지옥은 신의 부재’ 또는 ‘바빌론의 탑’이 훨씬 더 인상적이다.

내가 언어학에 대해 무식해서 그런지 몰라도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세 번쯤 읽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영화를 미리 본 사람이라면 한번만 봐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밀란 쿤데라는 소설이 다른 장르로 각색될 수 없을 때 고유한, 한 단계 높은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데미안’이 영화화 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나는 테드창의 소설도, ‘네 인생의 이야기’도 절대로 영화화 될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소설을 영화화 하려고 했다는 자체가 대단한 거다. 필립 K 딕의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고, 훨씬 심오한 문제가 아닐까.

현재 드니 빌뇌브가 작업하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어쩌면 너무나 쉽게 작업하고 있을 거라고 상상해본다. 하반기 개봉 기대 중.

▲ 미국판 책표지. 김상훈씨가 번역을 잘해줘서 굳이 영어로 읽고 싶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드니 빌뇌브에게 서운한 점이 있다면, 우리의 호크아이를 바보로 만들어 놨다는 점이다.

원작에서는 훨씬 더 명민한 물리학자의 모습을 보이며 두 사람 사이의 토론과 관계가 그들의 언어를 해석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리(제레미 레너)의 역할이 축소되었다는 것은 물리학의 역할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레미 레너가 맡은 물리학자는 헵타포드 언어의 물리학적인 진화, 이전의 뉴턴 시대에서 양자역학으로 진화하는 양상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과 일치하여.

"나는 손을 뻗어 선반에서 샐러드볼을 집어들었다. 이 움직임에서 특별히 강요받은 듯한 느낌은 없었다. 그러는 대신 딸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볼을 잡으려고 달려갈 때와 같은 절박한 느낌이라고 할까. 본능적으로 주저 없이 따라야 하는 느낌이다."

지금 우리의 언어가 질량이 보존되고, 에너지가 치환되고, 이익을 맞바꾸고, 가치를 측정하는 전통적인 물리학을 기반으로 한 언어라면(제로섬 게임), 외계인의 논제로섬 게임은 보다 운명론적인 논제로섬 게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언어의 물리학적 상징성, 생각을 표현하는 언어가 다시 생각을 지배하고 관계를 지배한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다.

즉 인간의 이기주의는 언어가 바뀌어야??사라질 수 있다. 한 단계 높은 진화는 언어를 통한 사고경로(process)의 변화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일직선의 언어로는 일직선 밖에 상상하지 못한다.

외계인이 지구에 왔다가 다시 사라진 것은 그들의 영원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현재 우리의 언어로는 ‘일어나기로 과거부터 예정되어 있던’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정리해볼 수록 대단하다. 현재의 언어로 그 한계를 묘사하려는 시도!

▲ 도시별 포스터 시리즈 중 가장 예쁜 홍콩(왼쪽), 영화몰입에 큰 역할을 한 음악(오른쪽)

영화에서는 딸과 루이스의 장면에 등장하는 상징이 다 등장하지는 못했다. HANNAH라는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이름 외에도 엄마와 딸의 flash-forward에서 외계인들의 4차원을 상징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 금발머리와 아빠곰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아쉽다.

"벌써 무슨 얘긴지 알고 있는데 애 나더러 읽어 달라고 하는거야? 얘기를 듣고 싶으니까!"

우리는 헵타포드나 루이즈처럼 살 수는 없다. 미래를 모른 채로 일직선 상의 삶을 살아간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언어는 본능적으로 주저없이 따라야만 하는 삶과 다르다.

루이즈가 도달한 얕은 물가에 가보지도 못한 우리.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더라도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인가? 4차원의 언어와 사고 속에서 3차원의 삶은 가능한가? 이것은 중요한 질문이다.

테드창은 전업작가가 아니라 따로 직업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작품 수가 적다. 나 역시 이 작가처럼 1년에 하나의 단편을 내더라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갖고 있다.

나는 책을 먼저 봐서 책이 훨씬 좋았다. 어쩔 수 없다. 먼저보았기 때문에! 지금은 ‘월드워Z’의 원작인 ‘세계대전Z’를 읽고 있는데 영화가 훨씬 재미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원작을 먼저 본 뒤, 그것도 내 생애 베스트로 꼽는 대작인데, 영화를 봐봤자 '책의 절반도 담지 못했다'라는 느낌을 가질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런 경험을 할 때 나는 세월 전체를 동시에 지각한다. 이것은 나의 남은 생애와 너의 모든 생애를 포함하는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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