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경영 리더십 - 녹십자] 3인4각 삼촌-조카 공조 경영
[제약회사 경영 리더십 - 녹십자] 3인4각 삼촌-조카 공조 경영
  • 곽은영 기자
  • 승인 2019.03.18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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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오너는 그 기업의 상징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에서는 기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너 하기에 따라서 기업이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너의 역할은 매우 막중하다. 풍부한 경영지식과 리더십을 갖추고 있음은 물론, 미래를 읽는 혜안도 필요하다. 올해로 122년의 역사를 아로새긴 한국제약산업의 더 높은 발전을 위해 우리나라 제약기업 오너(경영진)의 역량과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경기도 용인에 본사를 둔 녹십자그룹 본사.
경기도 용인에 본사를 둔 녹십자그룹 본사.

제약회사의 경영권은 1세에서 2세로, 2세에서 3세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녹십자는 창업자 2·3세인 삼촌과 조카가 공동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독특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고 허영섭 전 회장의 동생인 허일섭 회장과 허 전 회장의 두 아들인 허은철 대표이사와 허용준 부사장이 3인 4각 형태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 지주회사인 GC녹십자홀딩스는 허일섭 회장과 허용준 부사장이 공동대표이사로 참여하고 있고, 주력 회사인 ㈜녹십자는 허은철 대표이사가 이끌고 있다.

 

GC녹십자그룹 경영진 (왼쪽부터) 허영섭회장-허은철사장-허용준부사장.
GC녹십자그룹 경영진 (왼쪽부터) 삼촌 허일섭 회장 - 조카 허은철 사장 - 조카 허용준 부사장.

녹십자는 외형적으로는 삼촌이 밀어주고 조카가 끌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허일섭 회장이 지난해부터 지분 늘리기에 집중한 데 이어 그의 장남(허진성)을 주요 계열사인 녹십자바이오테라퓨틱스(GCBT, 캐나다 현지법인) 상무로 승진시키면서 그룹의 경영구도에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선대회장의 두 아들에게 실리던 경영권의 무게 중심이 허일섭 회장쪽으로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이유다.

 

백신개발·필수의약품 국산화 ... 녹십자 기반 닦은 고 허영섭 회장

녹십자는 1967년 세워진 ‘수도미생물약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동물용백신 제조를 목표로 만들어진 이곳은 의약품 제조에 집중하며 1969년 ‘극동제약’으로 상호를 바꾸고, 1971년 ‘녹십자’, 2018년 ‘GC녹십자’로 이름을 바꿨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2001년 진행했다.

녹십자가 지금의 백신 전문회사로서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었던 데는 고 허영섭 회장의 역할이 컸다. 고 허영섭 회장은 부친인 고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와 함께 녹십자의 근간을 닦았다. 허 전 회장은 1970년, 부친이 대주주로 있던 극동제약에 입사한 후 1980년 녹십자 대표이사, 1992년 회장을 거치는 동안 평생을 백신개발과 필수의약품 국산화에 힘을 쏟았다.

당시만 해도 국내 제약업계에서 백신은 수익성이 낮은 국가 주도 사업이란 인식이 팽배했고 대부분의 제약회사들은 해외의약품을 복제해 판매하는 데 주력했다. 그만큼 백신개발은 낯선 것이었지만, 결국 녹십자를 타 제약사와 차별화하는 힘이 되었다.

허 전 회장은 필수의약품의 자급자족을 목표로 경기 용인시에 공장을 짓고 일본뇌염백신 및 DPT(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 백신을 개발했다. 1971년에는 국내 최초이자 전 세계 여섯 번째의 혈액제제 공장을 짓고, 1983년에는 민간연구소를 지어 백신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등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수익성이 낮고 환자가 적더라도 치료에 꼭 필요한 의약품이란 판단이 들면 개발과 투자에 가감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자의 난’ 이후 삼촌-조카 공동경영 구도로 안정화

녹십자는 2009년 11월 허영섭 전 회장이 타계하면서 후계구도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슬하에 장남 허성수, 차남 허은철, 삼남 허용준을 두고 있던 허 전 회장이 장남을 제외한 차남과 삼남, 부인에게만 재산을 남긴 것. 허 전 회장은 유언장을 통해 보유하고 있던 녹십자홀딩스 주식 56만주 중 30만주를 장학재단과 연구소에 기부하고 나머지 26만주는 부인과 차남, 삼남에게 물려주겠다고 밝혔다. 장남 앞으로 남긴 유산은 전혀 없었다.

이에 허성수 전 부사장은 “어머니(정인애 여사)가 유언장을 조작했다”며 유언무효확인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이른바 ‘모자의 난’으로 불린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허성수 전 부사장은 사실상 후계구도에서 멀어져 갔다. 녹십자의 강력한 후계자로 3세 경영에 가장 먼저 참여했지만 집안에서 내몰린 ‘비운의 장남’이 된 셈이다.

허 전 부사장이 물러나면서 녹십자의 경영권은 자연스럽게 허영섭 회장의 차남인 허은철 사장이 지휘하는 모양새가 됐다. 1998년 녹십자에 입사한 허 사장은 R&D기획실 전무, 기획조정실장 부사장 등 요직을 거쳐 2015년 녹십자 공동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리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단독 대표이사로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허 사장은 내부적으로 직원들과 거리낌 없는 소통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녹십자의 한 관계자는 “평소에 임원 뿐 아니라 직원들까지 직급을 떠난 소통을 강조하고 실천한다”고 설명했다.

녹십자는 허은철 사장이 단독 대표이사를 맡기 이전까지 오너 일가와 전문경영인이 공동대표이사 체제로 운영하는 회사였다. 그러다 2016년 정기주주총회에서 당시 공동대표로 있던 조순태 부회장(대표이사)이 임기 만료로 물러나면서 허 사장 단독 대표 체제로 바뀌었다. 

허영섭 회장의 3남 허용준 부사장은 2003년 녹십자홀딩스에 입사, 녹십자웰빙 대표이사, 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실장 부사장을 거쳐 2017년부터 현재까지 삼촌인 허일섭 회장과 함께 녹십자홀딩스 공동대표이사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녹십자홀딩스 역시 그전까지 허일섭 회장과 전문경영인 이병건 사장이 공동대표로 이끌어오다 2017년 허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오너 일가 체제로 전환되었다. 녹십자 관계자는 “이후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오너 책임 경영을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영 참여 두 형제, 지주회사 지분은 미약 ... 공익법인이 지지대

지주회사인 녹십자홀딩스와 주력회사인 녹십자의 대표이사를 각각 허용준 부사장, 허은철 사장이 맡으면서 GC녹십자는 본격적인 형제경영 체제로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주회사 녹십자홀딩스의 지분을 통한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두 형제의 지지대가 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나온다. 선대회장이 물려준 지분이 워낙 적은 데다 2014년 어머니 정인애 여사 또한 허 전 회장으로부터 상속 받은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전량 처분했기 때문이다. 2월 14일 기준 두 형제의 녹십자홀딩스 지분율은 허은철 사장 2.56%(120만1770주), 허용준 부사장 2.70%(126만7454주)다. 두 형제의 지분을 모두 합쳐도 최대주주인 삼촌 허일섭 회장의 지분율 11.95%(561만7777주)에 크게 못 미친다.

따라서 녹십자홀딩스의 지분 중 16.17%를 보유한 목암연구소(9.79%), 미래나눔재단(4.38%), 목암과학재단(2.10%) 등 공익법인에 대한 장악력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향후 경영권의 향방이 크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녹십자는 공익법인의 역할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허은철 사장은 2004년부터 2년간 목암생명과학연구소 기획관리실장을 지냈고 현재 목암과학재단 이사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허은철 사장이 취임하면서 녹십자는 4년 연속 매출 1조 시대를 열었고 지난해에는 혈액제제 부문의 성장세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며 “이러한 실적들이 향후 경영권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다만 지난해의 경우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부진을 보였다. 실제로 GC녹십자는 연결재무제표 기준 지난해 매출이 1조3349억원으로 전년보다 3.6% 증가했으며, 동기간 영업이익은 502억원으로 전년 대비 44.5% 감소했다.

녹십자 관계자는 “지난해 연구개발 비용이 약 12% 증가하고 글로벌 진출을 위한 투자가 늘면서 영업이익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 CI 변경으로 광고비가 늘어나고 세포배양독감백신과 탄저백신 등 임상단계에 진입한 일부 약물이 잠정 중단되거나 연기된 것도 영업이익 감소에 한 몫 했다는 분석이다.

녹십자는 올해 주력 사업으로 혈액제제 및 백신 부문의 해외시장 진출과 희귀질환치료제 개발 가속화를 예고했다. 외형 성장을 넘어 R&D투자 성과를 통한 수익성 회복은 허 사장이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은 셈이다.

 

지분 매입·장남 승진 등 ... 허일섭 회장 행보 관심

허 전 회장의 타계 이후 녹십자는 당시 부회장으로 있던 허일섭 회장 체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허일섭 회장은 허 전 회장의 동생이자 고 허채경 명예회장의 5남이다. 1979년 녹십자에 입사 이후 전무이사, 부사장, 대표이사 사장, 부회장을 거쳐 2009년부터 현재까지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허 회장이 총수 역할을 하다 조카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물러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1954년생인 허 회장의 은퇴를 점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다. 특히 허 회장의 자녀 중 유일하게 경영일선에 나선 장남 허진성이 지난해 초 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팀 부장에서 핵심 해외계열사인 녹십자바이오테라퓨틱스 상무로 승진하면서 승계구도 논란이 재점화됐다. 허 회장이 수직 승계구도 다지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것이다.

허 회장이 지난해 12차례에 거쳐 자사주 8만2000주를 매입한 것도 논란의 불씨가 됐다. 녹십자의 최대주주는 지분 50.06%를 보유한 녹십자홀딩스다. 녹십자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지분 11.95%를 보유한 허일섭 회장이다. 여기에 허 회장의 부인인 최영아 여사(0.33%)와 장남 허진성(0.66%), 차남 허진훈(0.62%), 장녀 허진영(0.27%)이 보유한 지분까지 합치면 허 회장 일가의 지분율은 총 13.83%로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오너 일가의 지분은 지배력을 높이는 기반으로, 지분 확대는 경영권 강화를 의미한다. 허일섭 회장의 행보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녹십자 오너가 지주회사(GC녹십자홀딩스) 지분구조

 

허일섭 회장이 해결할 과제 ‘윤리경영’

허일섭 회장은 형인 고 허영섭 전 회장과 자주 비교선상에 놓여왔다. 허 전 회장이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은 것과 달리 허일섭 회장은 5년 연속 부채비율이 상승하고 영업이익률이 하락하는 등 실적 부진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핵심 가치인 윤리경영에 위배되는 잡음도 자주 터져 나오고 있다.

허일섭 회장은 지난 1999년 녹십자 윤리강령을, 2013년 이를 보완한 윤리기준을 제정하는 등 윤리경영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와 영업사원의 불법 행위 등이 드러나면서 표면적으로만 윤리경영을 내세운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는 녹십자엠에스와 녹십자이엠에 집중됐다. 진단시약·혈액백 등을 만드는 녹심자엠에스는 2003년 설립 초기 적자를 기록하다 2007년 흑자 전환 이후 매년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이 때 매출이 대부분 내부거래를 통해 채워졌던 것. 2010년에는 내부거래 비중이 100%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2015년까지 내부거래 비율이 20%로 줄어드는듯 하다가 지난해 3분기 기준 25.7%로 오르면서 다시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녹십자 관계자는 “일부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긴 했으나 공정위에서 제제를 받은 건 전혀 없다”며 “해당 자료는 한 시민단체에서 조사한 건으로 2017년 조사 당시에는 내부거래가 높은 편이었지만 이후 내부거래 비율을 많이 낮췄고 최근 3분기에 오른 수치도 따져 보면 1~2%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허 회장님을 포함해 녹십자 자체가 정도경영을 모토로 가고 있다”면서 “과거 상당히 높았던 내부거래 비율을 현재 20% 초반대로 낮춰 유지하고 있는 만큼 올바른 경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녹십자엠에스는 지분 42.10%를 보유한 녹십자가 최대주주다. 허 회장은 17.1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허은철 사장과 허용준 부사장은 녹십자엠에스 주주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바이오 엔지니어링 종합건설기업인 녹십자이엠도 매출의 절반 이상을 그룹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지분의 100%를 녹십자홀딩스가 보유하고 있어 매출이 그대로 오너 일가의 수혜로 돌아간다는 지적이다.

그런가하면 올해 초에는 GC녹십자 영업사원이 일반의약품을 사적으로 판매하려다 적발돼 부실한 인사관리 및 판매관리 시스템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사측은 곧바로 사과하고 해당 직원에 대한 내부징계를 진행했지만 논란은 피할 수 없었다. 

 

52년 생명공학 선도기업 ... 견제와 균형으로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 가능성 

한편 GC녹십자는 지난 2월 26일부터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에서 부당 내부거래 및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오너일가 수혜 여부와 해외사업 과정에서의 탈세여부 등 각종 탈·불법행위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GC녹십자가 세무조사를 받는 것은 지난 2014년 정기세무조사 이후 5년 만으로, 당시에도 국세청은 70억여 원의 추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사측은 통상적인 정기세무조사라는 입장이지만 연초부터 진행되는 세무조사라는 점에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다만 녹십자가 걸어온 그간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이 정도의 바람은 기업경영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녹십자는 지난 52년간 백신과 혈액제제 등 특수의약품 분야에서 우리나라 생명공학을 선도해온 대표적 제약사다. △국내 최초 유로키나제 생산 △국내 최초 혈액분획 제제 생산 △국내 최초 에이즈 진단시약 개발 △세계 최초 유행성출혈열 백신(한타박스) 개발 △국내 최초 독감백신 개발 △세계 2번째 헌터증후군치료제 및 수두백신 개발 △세계 3번째 B형 간염백신 및 세계 4번째 3세대 유전자 재조합 혈우병A치료제 개발 △천연물 신약 신바로 개발 △세계 4번째 4가 독감백신 개발 및 WHO PQ 승인 △국내 최초 조류인플루엔자 백신 개발 등 그동안 녹십자가 우리나라 제약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차고 넘친다.

따라서 삼촌과 조카들이 견제와 균형속에 흔들림 없는 공조의 틀을 유지한다면, 오히려 기업의 역량과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글로벌 시장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등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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