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 세상을 바꾸었다
전염병이 세상을 바꾸었다
  • 최중찬 원장
  • 승인 2019.04.0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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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리아뉴스 / 최중찬 원장] 종교의식, 예배, 일상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율법을 기록한 '레위기'(Leviticus)는 위생에 대한 내용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항상 신체를 깨끗이 하라는 점과 전염병이 돌 때와 산후조리 시에는 어떻게 해야 2차 감염을 막을 수 있는지 등이 '레위기' 전반에 걸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고대인들도 위생의 중요성을 알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병에 걸리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모신 신전에 가서 병이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곤 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을 신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상황에서 이왕이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신전도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건설한 것을 보면 미약하게나마 위생 관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460~377)도 위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비록 그를 따르던 후대의 학자들이 남긴 것이긴 하지만 《공기, 물, 장소에 대하여》에서 의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계절의 변화를 잘 이해하고, 각 계절에 따라 거주자들의 생활 방식과 물의 변화를 알아야 하며, 사람들이 적절하지 않게 섭취하는 음료수와 음식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마인들은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수로를 건설했고,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 목욕탕을 만들었다. 영국에서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 바스(Bath)의 이름은 로마 시대에 큰 목욕탕이 있던 것에서 유래했으며, 지금도 바스의 로마 시대 목욕탕은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중세 말기에 페스트가 유행하자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위생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환자와 접촉하면 병이 전염될 수 있으므로 환자를 피하는 것은 물론 시체 처리도 꺼려했고, 그 결과 위생은 더 나빠져 온 마을이 전염병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한편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태도가 발전하면서 병에 걸린 사람의 증상을 자세히 기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염병에는 성자나 죄인에 차이가 없으며, 위생을 포함한 각자의 생활 방식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서서히 눈을 뜨게 되었다.

18세기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이 부딪혀야 했던 질병의 대부분은 사고에 의한 손상과 전염병이었다. 물리적 손상은 그 발생 과정이 눈에 보이는 까닭에 이해하기가 쉬웠지만 전염병에 대해서는 신이 내린 벌처럼 무섭기만 할 뿐 지식이 별로 없었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텐데 원인으로 생각한 것이라고는 ‘미아즈마(miasma)’라고 하는 나쁜 기운을 가진 공기를 통해 질병이 전파된다는 가설뿐이었다. 엉터리임에도 불구하고 나쁜 기운을 가진 공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위생적 태도가 중요했으므로 이를 잘 지키면서 실제로 전염병 예방에 약간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위생 운동의 선구자 채드윅

한 세기가 지나기 전에 영국은 농업사회에서 도시 산업사회로 바뀌어갔다. 도시의 갑작스러운 인구 증가와 이에 따른 혼란은 ‘전염병 전성시대’를 위한 이상적인 조건을 형성해갔다. 1851년 영국 인구의 약 절반이 거주하는 도시의 환경은 지옥에 가까웠다.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었지만 공장 노동자들의 급여는 형편없었고, 가난한 사람들의 보건지표는 더욱 문제였다. 1840년 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평균수명은 귀족 다음인 젠트리 계층이 43세, 상인이 30세, 노동자는 22세였다. 이렇게 수명이 짧은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주거 환경과 작업장이 불결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비위생적 환경을 개선해야만 했다.

영국에서 위생 운동에 큰 역할을 한 선구자로 에드윈 채드윅(Edwin Chadwick 1800~1890)이 있었다. 그는 1831년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비서가 되었다. 벤담은 국가는 개인의 이익을 보장하면서 성장 가능성 있는 잠재력을 가져야 하며, 개인이 최대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다수의 복지를 증진해야만 한다고 주장한 공리주의자였고, 채드윅도 그 영향을 받고 있었다.

19세기 영국 사회는 소수의 부자들이 존재했을 뿐 대부분 가난했다. 계층 간의 차이는 물론 부의 불균형이 팽배했던 것이다. 16세기 말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부터 영국은 빈곤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 가난한 사람, 고아 혹은 본인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장애인을 위해 원조와 일자리를 제공하기로 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법을 수행하는 행정 업무가 복잡해져 문제 해결보다 더 많은 문제를 낳게 되었다. 19세기 초에는 빈곤 구제를 위한 지출이 재정 수입보다 더 빨리 증가했고, 중산층이 급부상하면서 법의 개정을 요구하게 되었다.

구빈법 개정을 위한 위원회에 조력자로 참여했다 뒤늦게 위원으로 활동한 채드윅은 구제를 받는 자는 자립한 근로자의 최하 계층보다 더 잘살도록 보장해서는 안 된다는 최소 자격 원칙을 제안했다. 이 원칙대로라면 근로자가 아무리 처참하고 가난한 상황이라 해도 일단 국가로부터 구제를 받게 되면 그 생활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자들이 최후 수단으로 선택한 구빈원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비참했다. 구제를 받지 못한 노동자는 산업화된 도시의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이로써 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노동력 공급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산업도시가 성장하면서 질병은 끊임없이 도시인들을 괴롭혔다. 노동자가 22세에 죽는다는 것은 노동자 수급이나 생산된 제품을 소비할 사람이 없다는 면에서 문제가 되었다.

1843년 영국 전 국민의 건강 수준을 조사하는 위원회가 구성되자 채드윅은 건강에 영향을 주는 하수, 상수, 주택, 사업장 등 오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철저한 조사를 시행할 계획을 세웠다. 그와 같은 환경운동가들은 빈곤한 자의 비위생적인 생활환경이 나쁜 건강과 짧은 수명의 원인임을 확신했다. 그 활동으로 공중 보건을 위협하는 질병과 조기 사망의 원인이 제거되었고, 빈민층은 공장 노동을 통해 생필품 구입을 위한 돈을 벌게 되었으며, 기업가와 투자자는 이윤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서부지부 최중찬 원장

영국의회는 이 위원회에서 제안한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했고, 시민들도 위생 개선이 건강 향상에 도움이 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1848년에 공중보건법이 통과되었다.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원안대로는 아니었지만 당시 영국의 열악한 위생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 법안에 따라 하수 시설 설치, 도로 포장, 오물 폐기에 대한 규제 등이 의무화되었다. 5년이 지난 1853년, 영국 근로자의 연간 사망률이 1,000명당 30명에서 13명으로 감소하였고 이를 전 영국에 적용하면 연간 약 17만 명이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평균수명이 29세에서 48세로 연장되었음을 의미한다.

채드윅은 1854년에 공직에서 은퇴한 뒤에도 크림 전쟁에 파견된 군대의 위생 상태가 엉망임을 간파하고 위생 조사단 파견을 주장하는 등 보건 위생 개혁에 한평생을 바쳤다. 위생 운동이 채드윅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위생 개선을 위해 평생을 노력한 그의 열정은 미래를 내다본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서부지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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