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로 떠오른 방사성의약품⑤-끝] 30년을 함께 한 방사성의약품 개발
[대세로 떠오른 방사성의약품⑤-끝] 30년을 함께 한 방사성의약품 개발
대한민국 핵의학 1호 약사 정재민 서울대 핵의학과 교수

약학전공자로 스승 제안으로 방사성의약품 연구 시작

세계방사성의약품학회장 맡아 국내 연구역량 발전 노력

“정부 당국에 방사성의약품 다루는 전문분과 필요”
  • 서정필 기자
  • 승인 2019.09.16 0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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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소재 원자력의학원은 지난 8월8일 국가 RI(방사성의약품) 신약센터 개소식을 열었다. 2013년 첫 삽을 뜬 지 6년만이다. 이 센터는 국내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할 수 있었던 방사성동위원소 기반 안전성·유효성 검증작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게 된다.

안전성·유효성 검증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곳이 없어 방사성동위원소 기반 치료용 의약품의 개발이 더딘 그동안의 상황을 감안하면 일대 변화를 맞이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센터 개소를 통해 복잡한 절차와 까다로운 인허가 과정을 단축, 방사성의약품 개발에 앞선 선진국을 본격적으로 추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는 2020년 세계 방사성의약품 시장 규모는 70억달러(약 8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신약센터 개소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방사성의약품 연구역량을 시리즈로 조명한다.
정재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핵의학과 교수

[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22일 충청북도 오송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중요성에 대해 특히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현재 바이오의약품은 전체 의약품 시장의 10% 정도이지만, 다른 산업에 비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신약 하나 개발에 1조 원 이상의 투자, 10년 이상의 기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인재와 기술력이 있으며 지금이 우리에게는 바이오헬스 세계시장을 앞서갈 최적의 기회”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직접 바이오의약품 개발이 바이오헬스 시장 선도국가로 나서기 위한 범정부적 과제임을 선포한 것이다.

요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대표적 바이오의약품은 방사성의약품이다. 일반적 의약품보다 연구부터 제품 생산까지의 과정이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연구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는데 필요한 핵의학, 약학, 수학, 화학, 생물학 등 인접 학문 수준도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복잡한 절차와 까다로운 인·허가 과정을 거쳐야 하는 탓에 연구가 이뤄지더라도 그 성과가 실제 상품화로 이어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아쉬움을 드러내는 연구자들이 많다.

정재민 서울대 핵의학과 교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초대 대한방사성의약품학회장을 지냈고 올 해 초까지 세계방사성의약품학회(Society of Radiopharmaceutical Sciences, SRS) 수장을 지낸 정 교수는 기자와의 만남에서 “‘연구를 잘 하는 것은 연구자들만의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시판 가능한 약품으로 탄생하려면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과 불필요한 규제 개선 그리고 정책 담당자의 전문성 신장도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 의생명연구원 6층 핵의학과 연구실에서 정 교수를 만나 약학 전공 학부생에서 국내 1호 핵의학과 약사가 된 이야기, 대한방사성의약품학회장과 세계방사성의약품학회(Society of Radiopharmaceutical Sciences, SRS)장으로 일하게 된 배경과 임기를 마치고 난 뒤의 소감, 우리나라 방사성의약품 개발을 위한 제언 등을 들어봤다.

 

서울대학교병원 방사성의약품 연구개발실

“그분(정재민 교수)은 파이오니아(개척자) 이시지요. 지금보다도 방사성의약품의 중요성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인데 대학원에서 이 분야로 방향을 바꾸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무래도 약학전공자시다 보니 연구 성과가 어떻게 하면 실제 의약품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 탁월한 안목을 갖고 계십니다.” 바로 옆 연구실을 쓰는 같은 과 동료 강건욱 교수의 말이다.

강 교수의 설명처럼 정재민 교수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약학을 전공한 뒤 전공을 바꿔 방사성의약품을 연구하며 핵의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우리나라 핵의학과 갑상선학의 개척자로 알려진 고(故) 고창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1980년대 초반 핵의학 발전을 위해서는 방사성의약품의 개발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약학 전공 학생들 중 방사성의약품 개발에 함께 할 사람을 수소문한다. 이 때 방사성 의약품 개발에 함게 하게 된 학부생이 바로 정 교수다.

“1982년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전에도 학부 수업을 통해 ‘방사성의약품’ 개념과 기본적인 내용이야 알고 있었지만 내용이 깊게 들어가니 많이 달랐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생소한 핵의학과 방사성의약품 분야 전문가가 되려니 배울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 후 30년 가까이 정재민 교수는 국산 방사성의약품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성과는 2010년대 초반 개발한 죽상동맥경화증에 대한 진단 및 조영기술(68Ga-NOTA-MSA)이다. 2014년 셀비온에 이전된 이 기술은 다른 제품과 비교해 원가경쟁력과 정확성 측면에서 우위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셀비온은 정 교수의 죽상동맥경화증 관련 기술을 이전받으며 이를 계기로 화장품 원료 사업에서 조영·진단 기술로 간판 분야를 바꿨다.

 

대동맥 죽상경화병소에서 18F-FDG PET영상과 68Ga-NOTA-MSA PET영상의 비교. A, 18F-FDG 영상으로 확대된 영상에서 초록색(붉은색 별표시) 부위의 죽상경화부위에 영상이 관찰됨. B, 68Ga-NOTA-MSA 영상으로 확대된 영상에서 역시 초록색(붉은색 별표시) 부위의 죽상경화부위에 영상이 잘 관찰됨.​(출처 : J Nucl Med. 2016.11)

 

20년간 꾸준히 국내 연구 역량 발전
세계 수준과 격차도 크지 않아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연구 수준이 자신이 연구를 시작하던 1980년대 중반과 비교하면 대단히 많이 발전했다고 진단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세계 수준과 격차가 분명히 존재했다. 저변도 지금보다 더 빈약했고... 하지만 지금은 많이 따라붙어서 이제 가장 앞서가는 국가가 눈에 보일 정도다. 과거에는 선두 국가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지금은 빨리 달리면 추월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정 교수는 현재 방사성의약품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국가로는 독일을 꼽았다.

“다른 의약품처럼 방사성의약품 분야도 인프라 수준 자체가 다른 미국이 상당히 앞서갔는데 2010년대 중반부터 판도가 바뀌어 독일이 추월했다. 사실 대상 병증을 정하고 그에 맞는 후보물질을 확정하는 단계까지는 어느 나라나 쉽게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아이디어를 연구, 분석 과정을 통해 실제 환자에 적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효능이 있다고 해도 부작용이 있으면 의미가 없으니 여러 반복 시험을 통해 부작용을 줄이는 절차도 중요함은 물론이다.”

정 교수의 설명처럼 방사성의약품 개발은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하여 신약 후보물질을 확정해 전임상 과정, 1단계 임상연구과정, 2-3단계의 상품화 및 의약품으로의 허가 과정을 거친다. 정 교수는 최근 들어 독일이 앞서가고 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제8회 동남권원자력의학원 핵의학 심포지엄에 참가한 정재민 교수

 

“5년 전부터 독일이 선도국가로 나서”

정 교수는 독일이 미국을 추월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장 큰 이유로 새로 개발된 방사성의약품을 의사 책임 하에 의약품을 환자에게 직접 적용할 수 있게 한 것을 꼽았다.

정 교수는 “의사에게 재량권을 주면서 계속해서 해당 약물을 효과는 탁월하고 부작용은 적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었으며 세계를 놀라게 지난 201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발표한 전립선 치료제 ‘225Ac-PSMA 617’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독일도 방사성약품에 대한 당국의 규제 자체가 약한 것은 아닌데  ‘방사성 의약품’의 특성에 맞게 병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전향적으로 재량권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다르다”며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그런 재량권이 없어 노력한 만큼 발전 속도가 빠르지 않으며 앞으로 재량권이 남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여러 절차를 고민한 뒤 재량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필요 이상으로 까다로운 인증절차와 규제는 큰 문제”

현재 우리나라에서 방사성의약품 연구를 진행하는 곳은 병원, 정부 기관, 기업 등 모두 10여 곳에 달한다. 

병원으로는 정 교수가 일하는 서울대학교병원을 비롯해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전남대학교병원, 전북대학교병원, 경북대학교병원 등이 있고 정부 기관으로는 원자력연구소, 원자력의학원, 정읍방사선연구소 그리고 기업으로는 퓨쳐켐과 셀비온, 카이바이오텍이 있다. 이렇게 여러 곳에서 연구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발전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아니다.

그는 발전속도 저하와 관련 “무엇보다 까다로운 관할부처의 인증절차와 규제때문”이라며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논의와 설득 과정을 통해 없애도 되는 절차와 규제가 적지 않다”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확실히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규제가 방사성의약품의 특성을 잘 담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턱대고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게 되면 안정성 문제와 도덕적 해이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방사성의약품 개발 과정에만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니다. 방사성 물질의 특이점을 반영해 기준을 다르게 세워달라는 것”이라고 부언했다.

정 교수를 비롯한 방사성의약품 연구자들이 꼽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방사성의약품에도 보통 일반의약품 생산 기준을 적용하는데 기준 중에는 방사성의약품에 적용하면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방사성의약물질은 그 성격 상 (약물이 아닌) 추적자(트래커) 개념으로 봐야 하는데 실제로 투여되는 물질의 모두를 약품으로 간주하고 허가용량을 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도저히 충족할 수 없는 기준이기 때문에 직접 연구를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애로점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대학교병원 방사성의약품 연구개발실

“승인과정서 방사성의약품만의 특징 고려돼야”

정 교수는 “우리나라가 바이오의약품 선도국가로 발돋음하기 위해서는 방사성의약품 허가 과정에 있어 그 특징을 고려해 규제가 고쳐져야 한다”며 “우선 일반의약품의 양과 방사성의약품의 양 개념이 달라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 교수는 “만약 ‘해당 약품 10g으로 여러 평가항목을 통과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면 일반 약품이야 그 용량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방사성의약품 경우에는 10g 만들려면 몇 백억이 소요된다”며 “이건 사실상 개발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연구 내용 중 지엽적인 부분 하나만 바뀌어도 처음부터 모든 허가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하는 모순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전했다.

“하나의 방사성의약품이 탄생하기까지 특성 상 여러 단계에서 다양한 물질들이 결합한다. 연구를 하다보면 이것들 중에 실제 임상시험 단계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내는 경우가 발생한다. 어떤 완충용액이 연구 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가 실제 상품화 과정에서 냉동건조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인산 용액이나 Na-Cl용액 등으로 대체해도 약리학적으로 문제가 없음에도 처음 보고서 만드는 과정부터 다시 해야 한다. 이렇게 의미없이 소모되는 비용과 시간이 많다.“

정 교수는 이러한 규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개발이 중단된 사례로 2005년 개발을 시도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좌절된 간암치료제를 소개했다.

정 교수는 “벌써 15년이 다 된 일인데 동위원소 표지화합물을 기반으로 간암치료제를 개발해 국제원자력 기구(IAEA 과제로 선정되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호주,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10여 개국에 특허까지 냈고 제품화하겠다는 미국 제약회사의 제의까지 들어왔는데 까다로운 국내 인허가 절차에 부딪히고 또 아쉽게도 당시 미국 제약회사가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를 입으면서 실현되지 못했던 일이 있다“며 “두고두고 아쉬움이 많이 남은 일“이라고 기억했다.

 

2017년 6월 제7차 방사선진흥포럼에서 ‘방사성의약품 신약개발 현황 및 당면과제’를 주제로 발표하는 정재민 교수

 

당국에 방사성의약품 다루는 전문분과 필요

정 교수는 올해 초까지 세계방사성의약품학회장을 맡아서 일했다. 이를 통해 미국과 유럽에 편중된 방사성의약품 연구 성과를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른 지역에도 고루 퍼지도록 하게 한다는 취지였다.

큰 임무를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온 대한민국 핵의학과 1호 약사는 마지막으로 “방사성의약품 개발은 연구자의 노력과 정부 당국의 지원 그리고 사회 전반적인 관심이 어우러져야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라며 정부에서 ‘방사성의약품’만을 주로 다루는 전문 분과 신설과 사회 전체적으로 미래를 선도할 의약품이라는 인식 제고가 이뤄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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