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화상투약기 도입 더는 미루지 말아야
[사설] 화상투약기 도입 더는 미루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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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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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리아뉴스] 약사사회가 정부에서 추진하려고 하는 의약품 자동판매기(일명 원격 화상투약기) 도입 문제를 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원격 화상투약기 도입은 대부분의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 및 공휴일에 환자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물론, 보건복지부까지 나서 사업 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지난 29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화상투약기는 오랫동안 논의된 쟁점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일단 규제특례로 국내에 도입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밝혔다. 시범사업이나 특례규정, 폐해 등에 대해 시범사업을 통해 검증해보고 정식 도입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 복지부의 입장이다. 

박 장관이 이 같은 입장을 밝힌 것은 지난 3년간 추진해 온 당번·공공 심야약국이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환자들 역시 화상투약기 도입에 대체로 환영하고 있다. 

화상 투약기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자판기와 비슷하다. 음료수처럼 소비자가 직접 의약품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화상으로 약사에게 증상을 설명하면 약을 살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약사가 약국 앞에 설치된 투약기의 대형모니터를 통해 환자와 원격 상담한 뒤 증상에 맞는 의약품을 판매하는 기계다. 따라서 원격 화상투약기가 설치되면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 시간대에 약을 구입하려는 환자들의 불편 해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이미 지난 2011년 화상 투약기 제품에 대한 특허까지 출원된 상태다. 그러나 약사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도입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비대면이 이슈가 되면서 지난해 ‘규제 샌드박스’ 과제로 선정된 화상 투약기 도입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다. 화상투약기는 ‘스마트 원격 화상 투약시스템 구축·운영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규제 실증 특례 심의 대상에 올라와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하지 못했다. 30일 열린 과기정통부 주재 ICT 규제 샌드박스 ‘제10차 심의위원회’ 안건에서 화상투약기 논의가 또 제외된 것이다. 이 안건이 상정될까봐 가슴을 쓸어내렸던 약사회 입장에서는 한숨 돌리는 상황이 됐지만, 이미 지난 2013년 원격 화상투입기를 개발한 기업은 7년째 제품 출시를 못하고 있다.  

화상투약기 도입이 이처럼 표류를 거듭하면서 심야 시간대에 의약품 구입에 애를 먹는 환자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의약품의 슈퍼판매가 시행되고 있지만, 극히 일부 품목에 그치고 있는데다 대부분의 약국은 저녁 8시 이전에 문을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약국들은 오후 7시 이전에 약국 문을 닫고 일요일 등 공휴일은 아예 문을 열지 않고 있어 지나치게 약사 편의 위주로 약국을 운영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심약 당번약국도 찾기 어렵다보니 밤에 몸이 아프면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한국의 실상이다. 환자 입장에서 보면 “심야시간에는 약을 팔지 않겠으니, 아쉬우면 낮 시간대에 약국에 찾아오라”는 의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화상투약기는 환자 편의를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심야시간이나 공휴일의 약국 수입도 늘릴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약사들이 전통적 약 판매방식을 고집하면서 화상투입기 설치를 반대하는 것은 그 의도가 다른 데에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대한약사회는 정부의 원격 화상투약기 도입 추진을 ‘영리기업의 비즈니스’로 규정하며, “정부가 이를 강행한다면, 8만 약사들이 대정부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약사회는 더 나아가 의약품 화상판매기 실증특례 도입을 ‘국민 건강을 실험하는 위험천만한 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원격 투약기는 개발회사가 혼자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원격 상담 등 약사들의 도움 없이는 약을 판매할 수 없다. 개발회사와 약사들의 협조 없이는 운영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 건강 실험 등을 운운하는 것은 심야에는 환자 상담 등 귀찮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지극히 약사 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한약사회는 “약국은 화상투약기 자리를 빌려주는 것일 뿐 실질적인 운영자는 영리기업 자본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한마디로 화상투약기를 설치해도 약사들은 이득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수입이 없는데 과연 어느 약사가 특정기업의 자판기 약 상담을 무료로 해준다는 말인가. 그것도 공휴일이나 심야시간에. 이는 한마디로 의약품 판매에 관한한 약사들이 절대적 권한을 갖겠으니 어떠한 도전도 용납할 수 없다는, 대국민 겁박이나 다름없다.  

시대가 변했다. 자신들의 편의도 중요하지만, 약사들이 진정 환자를 생각한다면 이제 화상투약기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 정부 역시 화상투약기 설치에 따른 문제는 없는지, 사전에 꼼꼼한 점검을 통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원격 화상투약기 설치, 더는 미룰 수 없는 문제다. 모든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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